이병찬

키네틱 아트

신-
차가 갖고 싶었다. 모니터에 비치는 다양한 색상의 여러 개 광고와 차를 밤마다 짧게 보고 잤다. 그러다 문득 내가 하는 마우스 질이 응답없는 기나긴 기우제를 지내는 기분이었다. 신을 부르기 위해 나무에 휘감은 원색의 천이 모니터 화면의 수 많은 광고창처럼 보였다. 나는 원활한 소비를 하고 싶은 마음에 컴퓨터와 상품에 주술을 거는 기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맑은 물을 그릇에 담지 않을 뿐 모니터와 나와의 관계는 소비라는 신을 모시기 위한 행동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긴장감 속에 작두를 타지 않지만 통장 잔고에 긴장하는 모습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 무신론을 자처했지만 신사임당을 벽에 걸어 놓지 않았을 뿐 결국 소비라는 신을 모시고 살고 있었다.


공포-
공포는 눈에 보였다.
만질 수 있었고 심지어 냄새조차 맡을 수 있었다.
어릴 적 공포는 단순했다. 선생의 구둣발과 몽둥이.
바닥에 얼굴이 짓눌릴 때 공포는 내 눈앞에 펼쳐진 모든 물질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공포의 힘은 내 눈앞에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도 않고 신체에 가혹도 욕설도 없이, 두려움을 만들어냈다.
방전될지 모르는 두려움.
은행에 들어가서 신체를 움직일 수 있는 여분의 배터리 잔량을 확인한다.
과거에 여러 번 신체를 방전한 경험 때문인지, 불안감의 습관으로 아이폰에 붉은 배터리잔량을 참을 수가 없다.
만질 수 없는 비 물질의 동력인 숫자는 팽창과 수축으로 물질에서 주는 두려움과 공포를 제압해버렸다.
비 물질이 주는 압력은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듯한 기형적 고통과 형상을 만들어 낸다.
일회성의 반복된 소비작동이 방전될지 모른다는 공포는 자본가를 위한 노동도 나를 위한 노동도 아닌 비 물질의 수축이 가져오는 두려움에서 해방되기 위한 노동을 가져왔다.
언제 어디서 방전된체 방치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말이다.


소비생태계의 작동과 형태-
지금의 소비생태계에서는 엔트로피 법칙을 성립되지 않는다. 여기서 자연의 무질서는 응축된 자본에 가까워질수록 정리된 모습으로 박제화 되며, 시세유지를 위한 도구로 장식된다. 생태계 시스템은 교체됐고, 자본에 의한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 졌다. 소비라는 동력이 있어야만 신체를 움직일 수 있는 지금의 생태계는 캄브라기 시기 폭발적인 종의 탄생처럼 다양한 상품형태를 쏟아내고 있다.
 
종이 경쟁적으로 종을 섭취하며 성장하는 진화론적인 과정처럼 소비생태계는 동종과의 경쟁으로 상품을 소비해야지만 생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놨다. 소비동력으로 신체를 작동해서 경쟁적으로 상품을 섭취해야만 하는 지금의 시스템은 도태되고 부실한 신체작동을 걸러내는 과정 만들어 낸다. 도태되어 원활한 소비작동을 할 수 없는 신체에 대한 태도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소비생태계에 대한 악의적 질문과 생태계를 기형적인 장면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만들었다. 그렇기에 소비생태계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바탕이 되는 것은 소비사회에서의 심리다.
생명체의 모습들은 소비사회에서 만들어진 일회성 소비들과 반복된 형태, 행동 등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키며 만들어진 일상속의 심리적 고통을 작업노트로 정리하며 시각화한다.
 
반복된 소비작동에서 기초가 되는 매질로 존재하는 사물인 일회용비닐은 소비생태계에서 등장하게 된 생명체 작업에 주로 사용되는 재료이다. 일회용 비닐은 흔한 가짜 플라스틱 형태의 소비상품을 담고 반복된 소비행위를 대표하는 사물이며 지금의 생태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매체로 보여진다.
생명체작업에 피부로 부착되어 불규칙한 면으로 빛을 반사하는 필름지는 비닐과 함께 생명체형태를 이루고 있다.
신체 스스로 소비될 수 있는 왜곡된 장면의 모습을 반사필름지로 시각화 하고 있으며, 생명체 내부로 비물질인 공기의 압력으로 팽창되며 형태가 등장하게 된다.
비물질인 자본의 팽창과 수축은 사람들의 신체작동에 제약을 준다.
지구 반대편 FRB의장의 말 한마디는 수축될지 모르는 비물질의 공포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보이지 않는 비물질의 팽창과 수축의 공포는 나아가 물질의 팽창과 수축을 가져온다. 그렇기에 도시라는 거대유기체의 움직임은 화석연료의 물질이 아닌 숫자로 구성된 비물질의 압력으로 생존한다.
보이지 않는 비물질의 압력은 보통의 사람들에게 숙주가 되어 신체의 원활한 작동을 연결한다. 그렇기에 소비생태계에 등장하는 생명체 작업에 팽창과 수축의 반복으로 나타나는 움직임의 원리로 사용되고 있다.
 
 
 
과도한 소비질량으로부터의 공간왜곡.
도시는 화려한 빛들로 일대를 수놓는다. 도시에서 빛은 단순한 시야확보가 아닌 상품성을 팽창시키는 장치이다.
원색의 강한 입간판 빛들과 쇼윈도의 빛나는 조명은 공간을 주목하게 만든다. 조명으로 주목된 공간은 보이지 않는 관성으로 물질들을 끌어당긴다.
지금 생태계의 빛들은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입자처럼 빛이 닿는 공간 곳곳에 소비질량을 부여하여 상품성을 팽창시키고 있다. 경쟁적으로 사용되는 화려한 조명은 빛이 닿는 일대에 과도한 소비질량을 부여하고 있다.
작은 조명장치들은 무거운 질량으로 공간을 왜곡하는 왜소한 중성자별처럼 도시공간의 장면들을 뒤틀고 있다. 상권에 장식된 식물들은 원색의 조명을 받으며 상품성을 부여받고 사람들 모두 확장된 상품성의 공간에서 활보하고 있다.
공간에서의 상품성 팽창은 대지에 막연한 기대를 불어 넣는다.
보이지 않는 초거대 질량인 블랙홀은 주변의 물질을 흡수하고 데이터만 남긴다는 가설이 있다.
시각적 정보 없이 데이터정보만 기록되는 보이지 않는 거대 질량은 도시의 개발과 유사한 과정을 보여준다.
텅빈 대지에 신도시개발은 거대한 사탕처럼 보이는 투자현수막을 배출하고, 동네는 해처리의 크립처럼 대지가 확장되어 개발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낳는다. 결국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텅 빈 땅은 일대에 강력한 중력으로 모든 것을 끌어당겨 공간을 왜곡하는 장면을 만든다. 그래서 비물질의 압력으로 팽창하는 생명체 작업에 사용되는 반사필름은 불규칙하게 비춰지는 화면의 특성으로 주변 공간이 왜곡된 형태로 보이도록 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소비질량에서 신으로.
과거부터 신이라는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 대상이면서 생태계를 작동시키는 힘을 가진 존재였다.
유발하바리는 사피엔스의 생존과정에 신이라는 필수적 요소가 있었다고 말한다. 자연계에서 비교적 약한 종인 사피엔스는 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절대적 힘을 믿음으로서, 다른 종들의 일반적인 소규모 공동체를 압도하는 규모의 집단화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발달된 문명은 신의 도덕이 아닌 법치로 작동하는 공동체이기에 사실상 신의 존재이유가 사라졌다. 하지만 사피엔스의 진화과정에서 경험된 비물질적인 신은 생태계가 교체된 지금도 보이지 않는 힘을 사용하며 공동체의 시스템을 움직이고 있다.
 
화려하게 빛나는 광고판들 사이에 붉은 십자가가 밝게 빛난다.
신의 홍보는 상권의 입간판, 쇼윈도의 밝은 불빛들과 치열한 경쟁을 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
소비사회에서 신은 소비행위의 맥락에서 벗어나지 못한 장면들로 소비되고 있다.
그래서 일신론에 입각한 집단이 다수를 이루는 사회이지만, 미국재무부는 신의 모습처럼 말 한마디로 모든 사람들의 소비작동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소비생태계에서 동종끼리의 생존경쟁을 초래하여, 기복적 사고의 애니미즘 현상을 만들었다.
과거 대지의 풍요를 위해 토지의 신을 부르는 방법의 장치였던 원색의 천들이 나무를 휘감은 모습과 대지에 울리는 만신의 방울소리는 지금 생태계에 형태가 바뀌어 등장하고 있다.
원색의 투자현수막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나무를 감싸고 있고, 상가의 사운드와 그리고 명당의 복권집은 가지각색의 현수막과 간판으로 기복적인 성황당의 이미지를 대신하고 있다.
다양한 기복장치들을 소비생태계에 시각적으로 연출하는 작업으로 원색의 엘이디 점멸장치를 사용한다.
상권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화려한 조명장치는 원색의 성황당이미지와 유사해 보이기에, 소비생태계에서 원활한 소비작동을 염원하는 장면으로 차용되고 있다. 염원에 매개체인 만신의 이미지는 스피커를 이용한 방울 사운드로 진행하여, 시각으로 완료되는 신을 부르는 장면이 아닌 사운드장치로 신의 행위를 확장하여 설명하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웨딩홀과 쇼핑몰에 화려한 치장으로 사용되는 플라스틱 꽃들은 만신의 집에 장식된 지화의 맥락을 사용하여 생명체작업과 함께 연출된다.

인터뷰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 해주세요.

저는 소비 생태계를 작업하는 이병찬입니다.

  
소비 생태계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주시겠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소비 작동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소비 작동으로 움직이는 도시의 생태계를 소비 생태계라고 정의합니다. 저는 그 생태계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생명체를 작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작업의 시작점으로 설명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저는 인천 송도 신도시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송도 신도시는 바다를 매립하여 만들어진 땅입니다. 그 도시에는 여러 가지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많이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등장하는 나무나 공원 같은 것들이 그 동네 상권을 발전을 위한 장식물로서만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자연계의 모습으로서 길거리가 조성된 것이 아니라 상권의 발전과 투자 유치를 위한 하나의 장식으로서 만들어진 거죠. ‘우리가 보고 있는 생태계가 과연 기존의 생태계가 맞는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저의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반복적인 노동보다는 무언가 창의적인 일이 저의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악과 미술 모두 좋아했습니다. 둘 중 하나의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마침 저의 친형이 미술을 먼저 시작하였고 그 영향으로 미술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주로 사용하시는 표현 방법과 스타일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제의적인 장면으로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간 왜곡이라는 질량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작업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생명체 작업입니다. 이 세 가지 작업 모두 소비 생태계를 기반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각각 설명드리자면, 제의적인 작업은 도시에서 사람들이 기복적인 장치로서 가지고 있는 것들을 사진과 같은 결과물로 재미있게 풀려고 하고 있습니다. 기복 장치는 소비 생태계에서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자본에 대한 욕망으로서 많이 표현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질량 작업의 경우는 소비 생태계에서 등장하는 자본을 향한 사람들의 욕망의 밀집도가 우리 주변의 시공간을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을 사운드 작업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저의 주된 작업인 생명체 작업은 키메라적인 형태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슴이나 다른 동물의 일부분을 연상시키는 생명체로 저의 작품이 보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정말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기괴한 형태로서 작업을 진행하는 이유는 소비 생태계에서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느껴지는 감정들이 굉장히 기형적인 형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작업 과정에서 중요시 하는 원칙이나 요소가 있나요?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작업을 할 때 최선을 다합니다. 좀 웃기게 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작업이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에 사용합니다.

 
비닐을 소재로 주로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비닐을 재료로 사용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제가 대학교를 다닐 때 알바를 하면서 굉장히 힘들게 생활을 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생들도 그렇게 생활을 했었죠. 매일 라면, 김밥을 먹으며 알바를 하고 학자금 대출을 갚으면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이 유흥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괴리감을 느꼈습니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내가 살고 느끼고 보는 생태계가 모두 거짓말같이 느껴졌습니다. 아름답게 조성된 거리는 사람들이 걸으면서 즐겁게 할 목적이 아닌 부동산 가격을 올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보는 나무와 같은 자연물, 풍경이 모두 거짓말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자본에 의해 엄청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과거에 제사장이 있었듯 지금의 제사장은 FED 의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자본으로 생태계가 움직이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이렇듯 거짓말 같은 생태계를 보면서 좀 다른 생명체를 찾아보고 또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쓰레기를 재료로 다른 형태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조형미가 너무 떨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여느 날 처럼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봉투에 담아서 자취집으로 가는데 문뜻 이 봉투를 이용해서 작품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투는 소비 생활에서 우리가 매일 사용하기 때문에 도시의 삶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의 색이 매우 강렬하고 독특합니다. 이러한 색을 사용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초기 작품에서는 파스텔톤의 일반 비닐을 사용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생명체의 형태에 대해 몰입할 때라서 작품의 색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작년부터는 원색의 필름지를 많이 사용합니다. 이러한 원색은 빛을 많이 반사하기 때문에 자극적인 느낌을 전달합니다. 이런 원색을 사용하여 자극적으로 보이고자 하는 이유는 도시의 원색의 조명과 간판들이 토지의 신을 부르기 위해서 무당이 굿을 하는 성황당의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진 성황당과 원색의 조명과 간판으로 가득한 도시의 소비 생태계가 같다고 생각했고 이를 원색의 자극적인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작품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으시나요? 

산책을 하면서 영감을 얻는 편입니다. 작업 때문에 바쁘지 않다면 보통 하루에 한 시간 반 정도 정해진 코스로 산책을 합니다. 주변 경치를 즐기기보다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걷는 편입니다.

 

대중에서 어떻게 인정받고 싶으신가요?

온전히 작품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싶습니다. 이병찬이라는 사람보다 이병찬의 작품이 대중에게 많이 기억되기 바랍니다.

 

- 2017. 10. 18. 인터뷰 by Art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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